李乙浩
乙浩1910. 10. 15 ~ 1998. 3.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갑술구락부
- · 영광체육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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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9) 1910년 10월 15일 전라남도 영광군(靈光郡) 영광면(靈光面) 남천리(南川里)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영광지역에 광흥학교를 세워 신학문을 전파한 이갑영(李甲榮)이다. 영광지역에서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영광보통학교 2학년 재학 중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23년 영광학원 중등과에 입학하여 2학년을 수료하고, 1925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2학년으로 편입하였다. 이후 최승달(崔承達)의 제자가 되어 한의학을 공부하였다. 1923년 경성약학전문학교에 진학하였으며, YMCA에서 체조 등을 배우면서 민족 계몽운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1930년 8월 5일 영광유치원 대강당에서 『조선일보』 영광지국이 후원하고 재외영광유학생학우회(在外靈光留學生學友會)가 주최하여 실시한 제2회 학생웅변대회에 연사로 참가하여 「종교에 대한 일고찰」을 주제로 발표하였다. 1933년 3월 17일 경성약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영광으로 돌아와 ‘호연당(浩然堂)’이라는 이름의 약국을 개업하였다. 1934년 3월 15일부터 31일까지 『조선일보』에 「종합대학수립의 전재 한방의학 부흥론에 대하여」라는 글을 연재하여 “한방의학의 부흥이 고전적 의학의 복사나 모방이어서는 안 된다. 그 정신을 음미하는 데서 비로소 진실한 부흥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934년 4월 영광읍 교촌리 명륜당에서 영광체육단(靈光體育團)이 창단될 때 참여하여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해 8월 갑술구락부(甲戌俱樂部)결성에 참여하여 체육과 체조를 장려하면서 단원들의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하였다. 1935년 3월 『동양의보』 제2호에 「이제마 『사상의학(四象醫學)』」이라는 논문을 투고하였다. 1936년 4월 26일부터 『조선일보』에 「사상의학설 비판 그 이론과 실체에 대하여」라는 글을 연재하여 “사상철학적 인간학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종합적 인간학으로 이해”되야 한다는 입장을 전파하였다. 1937년 9월 일제 경찰이 ‘동방약소민족 옹호, 대한독립만세’라 쓴 벽보를 빌미로 영광 지역의 지식인 및 애국지사들을 탄압하여 이때 붙잡혀 목포형무소에서 1년 6월간 옥고를 겪었다. 옥중에서 역학(易學) 관련 서적을 비롯한 경전을 공부하면서 정약용(丁若鏞)의 『여유당전서』를 접하고 정약용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풀려난 후 학술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으며, 영광 지역에 민립 남녀중학교를 세우고자 시도하였다. 학교 부지로 사용할 논 9만여 평과 운영기금으로 벼 1천석을 제공하였다. 광복 후 1945년 10월 영광지역에 민립 중학교를 설립하였으며, 1948년 광주의과대학 약국장으로 초빙되었으며, 1955년 전남대학교 문리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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