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稷
承稷1889. 1. 16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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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6) 1889년 1월 16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영주면(榮州面) 휴천리(休川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선규(李善奎)를 사용하였다. 독립운동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5년 (음)6월부터 서울에서 활동하였다. 익선동(益善洞) 차진원(車鎭源), 도렴동(都染洞) 이강래(李康來)·김정빈(金正彬) 등의 집에서 이강래·김정빈·이승호(李承鎬)·남정호(南廷鎬)·류연건(柳淵建)·신언학(申彦學) 등과 여러 차례 회합하며 국권 회복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들은 중화민국(中華民國) 총통(總統)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주차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駐箚朝鮮總理交涉通商事宜)로 한국에 주재할 당시, 중국 육군장관 마젠충(馬建忠)이 위안스카이의 알선으로 고종에게서 은 26만 냥을 빌리고 이를 증명하는 차용증을 건네주었다는 내용을 전해 들었다. 그래서 이 차용증을 건네받아 이를 가지고 위안스카이와 교섭해 빌려준 돈을 받을 계획을 세웠다. 이 자금을 기반으로 다수의 동지를 모은 후 중국 간도의 비옥한 땅으로 이주하게 하고 건북유한공사(建北有韓公司)라는 비밀단체를 조직하여 신한국(新韓國) 건설의 기초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될 것에 대비하여 위안스카이가 한국의 독립을 제의할 수 있도록 유도하자고 하였다. 이에 거짓 성명서와 위임장 등을 작성하여 위안스카이에게 보내기로 하였다. 이것은 광무황제(고종)의 명의로 구한국의 추락한 종사를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겠다는 뜻의 성명서, 한국독립을 승인하여야 한다는 뜻의 성명서, 한국 황제 특파대표위원파견의 위임장, 국권회복에 충성을 다하라는 취지의 유시문(諭示文) 등이었다. 이렇게 위조 인장을 날인하여 위와 같은 문서를 제작한 후 1915년 (음)8~9월까지 이것을 지니고 황해도·경상도 방면으로 다니며 동지 모집의 자료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던 중 1916년 4월 11일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해 10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풀려난 후에는 영주(榮州) 지역으로 가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9월 11일 영주청년회가 개최한 제2회 강연회 때 ‘청년의 급선무’라는 주제로 강연을 맡는 등 민중계몽을 통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3월에는 동아일보사 안동지국 영주분국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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