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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以翊

以翊

1868. 4. 26 ~ 1935. 3. 12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以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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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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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관련 사건

  • · 파리장서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0) 1868년 4월 26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지천면(枝川面) 심천리(深川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무렵에 유림 인사들이 모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평화회의에 제출하려고 작성한 독립청원서[(獨立請願書), 일명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서명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시작된 이후 전국 곳곳에서 독립만세의 외침이 울려 퍼졌으며, 모든 사람들이 이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때 영남(嶺南) 유림의 영수(領袖)인 면우(免宇) 곽종석(郭鍾錫)은 민족대표 33인에 유림 인사가 없다는 것을 통탄하였다. 더욱이 일본의 조작으로 이완용(李完用)을 필두로 김윤식(金允植)·이용직(李容稙) 등이 유림 대표로 이름을 걸고 ‘독립불원서(獨立不願書)’를 제출하였다는 소문이 돌자, 곽종석은 매우 분개하였다. 곽종석은 김창숙(金昌淑) 등과 전국 유림의 의견을 모으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이중업(李中業)·김정호(金丁鎬)·성태영(成泰英)·류준근(柳濬根) 등 경남 유림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파리장서의 취지와 계획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였다. 경상도 지역을 담당한 사람은 김창숙이었는데, 이때 김창숙을 만나 파리장서의 취지를 듣고 서명에 동참하였다. 각지로 떠난 유림들이 서명을 모으는 사이 경남 거창(居昌)의 곽종석 집에서는 파리장서의 초안이 만들어졌다. 전국으로 흩어졌던 유림들은 3월 중순 서울로 돌아와 모였고, 그 자리에서 파리장서의 최종안이 결정되었다. 이들은 최종안에 서명을 옮겨 적은 후 이를 중국 상하이(上海)로 보냈다. 상하이에서 한문본 3,000부, 영문본 2,000부를 인쇄하여 파리강화회의와 중국, 해외 각국에 발송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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