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應八
應八1897. 6. 2 ~ 1938. 1. 1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안동군 임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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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7년 6월 2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예안면(禮安面) 동천동(東川洞)에서 태어났다. 이후 안동군 임북면(臨北面) 사월동(沙月洞)으로 이주하였다. 본관은 예안(禮安)이고, 자는 관선(寬善)이며, 호는 장암(長岩)이다. 1919년 3월 22일 안동군 임북면 사월동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임동면(臨東面)에서 거행된 만세시위 소식은 인접한 임북면 사월동 청년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시위대가 편항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한 것에 큰 자극을 받았다. 이에 마을 주민 권태환(權泰煥)·권오규(權五奎)·천치락(千致洛)·김일선(金日先)·배방우(裵方于)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실행하게 되었다. 3월 22일 오후 2시 30분경 주도자들과 함께 사월동에 위치한 임북면사무소로 이동해,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들의 만세 소리에 300여 명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열기가 고조되자 주도자들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고 면사무소로 이동하였다. 이때 권영석(權寧奭)은 면사무소에 돌을 던졌고, 권오규는 유리창을 부쉈다. 이어서 권태환·천치락 등과 함께 앞장서서 시위대를 이끌고 면사무소로 들어가 사무소와 숙소 건물 2동을 파괴하였고, 내부에 비치된 비품과 장부류 등을 불태웠다. 만세시위는 오후 5시까지 이어졌으며, 이후 자진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의 주도자 검거 작전으로 동지들과 함께 4월 중순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건조물손괴죄, 가택침입죄, 상해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여 같은 해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지만, 다시 징역 2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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