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位春

位春

1884. 4. 23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位春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북 정주(定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정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오산학교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3)

관련 사건

  • · 1919년 정주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3) 1884년 4월 23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갈산면(葛山面) 익성동(益城洞)에서 태어났다. 의생(醫生)으로 일하였다. 1919년 3월 5일 정주군에서 만세시위에 사용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다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에 전세계 식민지민이 감응하여 자주적인 독립운동에 대한 의식이 싹트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이승훈(李昇薰)은 기독교와 천도교의 제휴를 통해 독립운동을 하기로 계획하였다. 이어 2월 24일 오산으로 다시 내려와 오산학교(五山學校) 교장 조만식(曺晩植), 교사 박기선(朴基璿) 등과 만나 만세운동에 대해 논의하였다. 오산학교는 1919년 3월초부터 일제의 엄중한 감시 아래 있었지만,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5일 오산학교 여학부의 전(前) 교수였던 강승렬(姜昇烈)의 지휘로 이기칙(李基則)과 이정급(李貞伋)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 자택에 보관하였다. 이어서 선언서를 등사할 기구들과 종이를 가져와 등사해줄 것을 요청하자, 이에 응하여 선언서 제작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제작을 완료한 독립선언서 150장을 다시 이기칙에게 전달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이 발각되어 같은 해 3월 6일 정주헌병대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일자미상일에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고, 같은 해 5월 2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다시 징역 8월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 해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