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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源華

源華

1875. 1. 4 ~ 1957.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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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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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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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합천군 초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5년 1월 4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초계면(草溪面) 상대리(上坮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1일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합천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8일 삼가면(三嘉面) 읍내에서 거행된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3월 23일 13,000명이 모인 삼가시장 만세시위로 절정을 이룰 때까지 거의 매일 군내 각 지역에서 거행되었다. 이러한 만세시위의 계기는 서울 만세운동 소식과 독립선언서가 고종 장례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한 지역 유림과 서울 유학생 및 서울에 거주하는 지역민 등을 통해 군내에 전달·배포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유림과 유지층 민족주의 인사들이 은밀하게 회동하여 거사를 논의하였다. 지역의 명망 있는 유림인 시암(是庵) 이직현(李直鉉)의 조카로 무릉리(武陵里)의 유지인 전하선(全夏善) 및 성만영(成萬永)·김덕명(金德明) 등과 함께 초계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만세시위 계획을 주도하였다. 이를 위한 준비 작업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전단지 제작과 군중 동원을 위한 각 마을별 연락 분담 등으로 나누어 은밀히 진행되었다. 태극기는 일일이 그리기가 어려워, 문양을 새긴 나무로 찍어냈다. 3월 21일 성만영·전하선·김덕명 등과 함께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등을 가지고 초계장터로 갔다. 오후 1시가 되자 계획한대로 주도 인물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읽고 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장터의 사람들이 호응하며 삽시간에 4,000명으로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시장에서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그리고 일부 청년들과 더불어 초계우편소(草溪郵便所)로 가서 통신선을 절단하였다. 이는 합천경찰서와 헌병대에 연락이 가서, 증원 병력이 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시위대를 이끌고 주재소로 이동해 건물을 포위하고 돌을 던져 유리창을 파괴하였다. 당황한 주재소의 일제 경찰들이 공포탄을 발사하며 진압에 나서자, 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섰다. 분노한 시위대는 발포한 일제 경찰 2명을 붙잡아 구타해 부상을 입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확산된 만세시위 소식을 접한 합천경찰서에서 병력을 파견하였고, 주재소 경찰 등과 합세하여 본격적으로 만세시위를 진압하였다. 진압 병력은 주재소 경찰이 구타당해 부상을 입은 상황 등을 빌미로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총검을 휘두르며 총격을 가하였다. 그 결과 현장에서 김장배(金長培) 외 1명이 사망하고 시위를 주도하던 권국서(權國瑞)·이원탁(李源鐸) 외 8명이 부상당하였으며, 시위대도 해산당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를 피하지 못하고, 성만영·김덕명 등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8월 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4년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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