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元春
元春1871. 6. 10 ~ 1936. 6.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의성군 안평면 일대(3.15~19)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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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71년 6월 10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안평면(安平面) 대사리(大司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의성군 안평면 대사동(大司洞)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한 만세운동이 경북 의성군 안평면에도 전파되었다. 3월 15일 대사동 교회에서 주일 낮 예배를 마친 김옥돈(金玉頓)과 같은 교회 신도인 이북술(李北述 혹은 李華實))·이종출(李鍾出)·이양준(李良俊) 등과 함께 교회에 모여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만세운동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그러던 중, 이날 의성에서도 만세시위를 거행하자고 제의하자 참석자들은 그 제안에 적극 찬성하였다. 만세시위를 준비하기 위해 마을 주민인 이맹준(李孟俊)·이수원(李守元)·이만준(李萬俊)·배세태(裵世泰)·정갑이(鄭甲伊)·이흔이(李欣伊) 등에게도 계획을 알리고 동의를 얻었다. 이후 본격적인 거사 준비를 시작하면서 교류하던 마을 청년 김태선(金兌先)·김오명(金五命)·김봉수(金奉洙) 등에게 만세시위 준비 소식을 전파하고, 그들을 설득하여 동지로 규합함으로써 거사 준비에 적극성을 보였다. 3월 15일 오후 7시 100여 명의 마을 주민은 대사동 뒷산에 올라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시위 대열의 선두에서 그들을 이끌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뒤이어 시위 군중은 대사동을 일주하며 행진을 전개함으로써 일제를 향한 확고한 저항 정신과 독립에의 의지를 드러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일제 군경은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위 주도자 및 참여자들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6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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