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元根
元根1874. 3. 17 ~ 1949. 2.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관련 사건
- · 1919년 7월 서울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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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3) 1874년 3월 17일 경기도 부천군(富川郡) 대부면(大阜面) 동리(東里, 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한지면(漢芝面) 보광리(普光里,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보광동)에 거주하였다. 1919년 7월 26일 서울 동대문 앞에서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7월 보광리 주민이자 기독교인인 이순화(李順和)·박기운(朴氣運)·진응수(秦應洙) 등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계획되었다. 이들을 포함해 고양군 한지면 한강리(漢江里,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주민 전여수(田汝秀), 서울 산수정(山手町, 현 용산구 산청동 일대)에 사는 사숙교사(私塾敎師) 노원장(盧元長) 등과 함께 7월 26일 서울 사대문에 태극기와 유사한 팔괘기(八卦旗)와 십자가기를 걸고 독립운동을 촉구하는 방문(榜文)을 사대문 성벽에 게시할 것을 협의하였다. 이순화의 지시에 따라 시위 당일에 입을 시위복을 미리 마련하고, 북문을 맡아 기를 게양하고 방문을 붙이기로 하였다. 이순화와 진응수는 남대문을, 전여수는 동대문과 서대문을 맡았다. 7월 26일 이른 아침 미리 준비한 시위복을 입고 참가자들과 동대문에서 모였다. 이날 박기운과 함께 전날 배치해 둔 깃대에 팔괘기와 십자가기를 걸어 동대문 옆에 세우고 방문을 성벽에 붙였다. 이순화 등과 함께 작은 깃발을 손에 들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하며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0년 9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중 30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 후 동일한 형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송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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