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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龍南

龍南

1890. 10. 4 ~ 1944.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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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龍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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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원산(元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원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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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2)

관련 사건

  • · 함흥군 주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2) 1890년 10월 4일 함경남도 원산부(元山府) 남산정(南山町)에서 태어났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 주지면(朱地面) 계동리(溪東里, 현 함주군 주지면 흥상리)에 거주하면서 당시 삿갓을 제조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다. 3월 21일 함흥군 주지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平壤)을 비롯한 7개 도시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함흥군에는 그 직후에 이미 독립운동 소식이 전달되어 3월 3일 처음 만세시위가 있었고, 주지면에서는 3월 3일, 3월 6일, 3월 21일에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3월 21일 오후 2시 무렵 주지면 지경리(地境里, 현 흥상리)의 장날을 맞이해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에는 학생과 주민 300여 명이 시위대에 합류했으며, 시위대의 일원으로 태극기를 흔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지경리 경찰관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주재소에 도착하자 일제 경찰들이 막아 서며 해산을 강요하였다. 시위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조선독립만세’를 더 소리 높게 외쳤다. 그러자 일제 경찰들은 공포탄을 발사하는 등의 강경 진압을 시도하는 한편 만세시위에 참여한 인사들을 연행하였다. 일제 군경에 의해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7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 해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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