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龍基
基1880. 7. 22 ~ 1942. 2.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보은군 내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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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80년 7월 22일 충청북도 보은군(報恩郡) 내북면(內北面) 산성리(山城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그 해 4월 8일 보은군 내북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평소 일제의 식민 통치에 대한 강한 불만과 함께 독립의 희망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던 중, 3월 1일 이래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하고 있음을 파악하였다. 독립을 위한 방법으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운동의 취지에 크게 공감하여 향리에서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4월 8일 밤 마을 주민들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현재 이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상황을 알리면서 만세시위를 함께 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에 공감한 20여 명의 주민들이 동참하였다. 이들을 규합하여 산성리의 서쪽 뒤편 언덕을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큰 목소리로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는 횃불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밤 내북면에서는 서지리(西枝里)에서도 산성리와 비슷한 횃불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구열조(具悅祖)는 이날 밤 내북면 서지리에서 같은 마을 사람들에게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김성복(金聖福)·김수려(金秀麗) 등 10여 명의 주민이 만세운동에 동참하자, 구열조는 이들을 규합하여 성산(城山)으로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횃불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서지리의 다른 마을에서는 윤정훈(尹鼎勳)이 같은 마을의 윤홍훈(尹洪勳) 등 8명의 주민들을 규합하여 동리의 무명산(無名山, 일명 갓빈데산)으로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8일 내북면의 세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된 횃불 만세시위가 주도자들 간에 사전 협의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이날의 횃불 만세시위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6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 해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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