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永根
永根1894. 5. 11 ~ 1922. 8.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1919년 4월 사천군 곤명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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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894년 5월 11일 경상남도 사천군(泗川郡) 곤명면(昆明面) 금성리(金城里) 이씨(李氏)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섬천(陝川)이다. 고향에서 한학(漢學)을 수학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정원주(鄭元柱)·문형근(文馨根) 등과 함께 1919년 4월 5일 사천군 곤명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사천군 만세운동은 서부 경남의 중심 도시로, 이웃한 진주(晋州)에서 지역 청년들의 주도로 전개된 3월 18일 대규모 만세시위로부터 상당히 큰 영향을 받아 조직되었다. 향리에서 지역의 영향력 있는 유림으로 활동하던 중,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던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만세운동의 취지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여 고향인 곤명면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그 직후 만세운동을 함께 조직할 동지 규합에 노력하였다. 이전부터 학문을 교류하며, 국권이 상실된 나라의 현실과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한 반일사상에 뜻을 같이하고 있던 문형근(文馨根), 금성서당의 훈장 정원주(鄭元柱) 등에게 진주의 만세시위 상황을 전달하며, 곤명면의 만세시위 조직을 제안하였다. 이에 문형근과 정원주가 적극적으로 찬성하여 동지로 결합함에 따라 구체적으로 만세시위의 계획과 준비에 착수하였다. 정원주·문형근과의 논의를 통해 만세시위의 거사일을 4월 5일로 결정하고, 이날 마을 앞의 덕천(德川)변에서 주민들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후 만세시위에서 주민들에게 배포할 격문을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구체적으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4월 5일 아침 덕천변에 만세시위의 참여를 결의한 2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정원주·문형근과 함께 주민들에게 준비한 격문과 태극기를 배포하면서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덕천변에 모인 주민 전체가 태극기를 받아 흔들며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따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주민들을 지휘하여 만세시위 대열을 형성하고, 만세시위대의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금성리 일대를 행진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와 같이 만세시위를 지휘하던 중, 만세시위의 발생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일제 헌병대에 의해 현장에서 붙잡혀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9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겼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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