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烈性
性1879. 8. 2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북청군 노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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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7) 1879년 8월 29일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평산면(坪山面) 서도리(西島里)에서 북청 천도교구장을 지낸 이유년(李有年)의 아들로 태어났다. 만세운동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북청군 천도교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3월 11일 함경남도 북청군 노덕면(老德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가 배포되었다는 소식을 지인을 통해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천도교주인 손병희(孫秉熙)가 구속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만세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3월 11일 노덕면 내리(內里)에서 만세시위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하게 되었다. 3월 11일 북청군 노덕면 만세시위는 북청군 천도교 조직을 통해서 준비되었다. 3월 8일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천도교도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고 북청군 성대면(星垈面) 집으로 돌아온 김용완(金溶玩)은 김재식(金在植) 등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주고 만세시위 참가를 권유하였다. 한편 3월 10일 북청 천도교구실에서 교구장 김태종(金泰種)은 한명길(韓明吉)에게 3월 11일 만세시위 계획을 북청 천도교도들에게 전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10일 천도교구실에서는 독립선언서가 인쇄되었다. 당시 천도교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만세시위 계획을 사전에 전달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3월 11일 12시 천도교구실에 집합한 천도교도들은 북청읍내로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출동한 북청헌병분대(北靑憲兵分隊) 헌병들에 의해 제지당하였다. 그래서 시위 군중들은 남문과 서문 밖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북청읍내에서는 천도교도와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50~60명의 군중들이 모였다. 이때 조석권(趙錫權)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읍내를 돌아다녔다. 이날 시위로 북청헌병분대에 붙잡혔다. 일제 헌병에서 조사받던 중 천도교가 무기 구입을 위하여 자금 모집하였다고 허위 진술하도록 고문을 당하였으나 이 사실에 대해 부정하였다. 이후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미결구류일수 중 12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미결구류일수 중 60일 본형 산입)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0년 3월 31일 형이 만기되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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