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陽震
陽震1884. 1. 1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1919년 영흥군 진평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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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1) 1884년 1월 13일 함경남도 영흥군(永興郡) 진평면(鎭坪面) 신당리(薪塘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3일 영흥군 진평면 진흥리(鎭興里)에서 거행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시작된 이후, 다음날인 3월 2일 영흥군에도 천도교 조직을 통해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당시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거행되고 ‘독립만세’를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김창집(金昌輯)·이용돈(李容敦)과 함께 3월 23일 진평면 진흥리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대형 태극기를 만들기 위해 비단을 구입해 위쪽에 태극을 그린 후 아래에 ‘대한독립기’라고 쓴 깃발을 제작하였다. 3월 23일 오후 2시경 진흥시장에서 김창집·이용돈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용돈이 깃발을 휘둘렀고, 시장에서 합류한 이양동(李陽東)·이배현(李培賢)·한문행(韓文行)·김영준(金英俊)·이명진(李明鎭) 등과 더불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장에 있던 30여 명도 만세시위에 동조하려고 하였으나, 일제 경찰의 제지로 만세시위는 확대되지 못하였다. 이 과정에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7일 함흥지방법원 영흥지청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고, 같은 해 4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다시 징역 6월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5월 2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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