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麗先
先1876 ~ 1919. 4.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홍천군 내촌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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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내촌면(乃村面) 물걸리(物傑里)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76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4월 3일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홍천군 내촌면 만세운동은 홍천군 뿐만 아니라 인근의 인제군(麟蹄郡) 주민들까지 1,000여 명이 참여한 만세시위였다. 이 만세운동이 대규모로 전개될 수 있었던 것에는 물걸리의 지역 특징이 한몫하였다. 물걸리에 면사무소와 같은 관공서는 없었지만 영동과 영서의 물화(物貨)가 교류하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상설시장이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였고, 마방(馬房)과 주막이 있었으며, 많은 물품을 저장하는 상업용 창고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홍천군 내촌면 만세운동을 처음 계획한 김덕원(金德元) 등은 이러한 물걸리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였다. 김덕원은 같은 마을에 사는 천도교 장두(狀頭)로서 마을의 천도교인들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주도 인물들은 장터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전영균(全榮均)의 다락방에 모여 만세시위 때 쓸 태극기 200여 장을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천도교 교인들을 연락책으로 물걸리 뿐만 아니라 내촌면 와야리(瓦野里)와 문현리(文峴里), 화촌면(化村面) 장평리(長坪里), 서석면(瑞石面) 수하리(水下里), 인제군 기린면(麒麟面) 상남리(上南里)와 내면(內面) 방내리(坊內里) 등지에도 시위 계획을 알리고 동참을 독려하였다. 3월 말, 만세시위를 준비하던 주도 인물들은 4월 1일과 2일에 홍천면(洪川面)과 동면(東面)에서 각각 만세시위가 있을 예정이라는 소식에 거사일을 4월 3일로 정하였다. 4월 3일 아침에 장터로 향하였으며, 장터에는 이미 주민과 장꾼들로 붐비고 있었다. 정오 무렵, 태극기를 배포받았다. 이때 주도 인물들이 대형 태극기를 시장으로 들고 들어오고 양도준(梁道俊)의 징 소리로 만세시위 시작을 알렸다. 전성렬(全性烈)이 사회를 보고, 김덕원이 개회 연설을 하면서 만세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전우균(全祐均)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이문순(李文淳)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문순의 선창에 시위대와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불렀다. 시위대의 한 사람으로 장터를 행진하고, 이후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憲兵駐在所)가 있는 도관리(道寬里)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때를 노리고 있던 일제 헌병들이 시위대를 가로막고 총을 발포하였다. 갑자기 날아든 총탄에 맞아 전영균·양도준·이순극(李順克)·이기선(李基先) 등과 같이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시위대도 무차별적인 총격도 흩어지면서 만세시위도 끝이 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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