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始雨
始雨1894. 7. 5 ~ 1934. 3.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청주군 북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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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8) 1894년 7월 5일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북이면(北二面) 신기리(新基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청주군 북이면사무소의 면서기로 근무하였다. 그 해 4월 1일 면사무소에서 함께 면서기로 근무하고 있던 김호상(金浩相)·김정환(金貞煥)과 소사(小使)로 근무하고 있던 장성이(張聖伊) 등과 함께 북이면의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청주군 북이면 만세운동은 청주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던 만세운동의 상황에 큰 영향을 받았다. 청주에는 천도교 교구망을 통해 3월 2일에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고, 3월 7일 최초의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만세운동은 정미의병 때 청주군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한봉수(韓鳳洙)가 주도하였다. 이후 청주에서는 4월 초까지 지속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3월 7일의 첫 만세운동 이후 충북의 각지로 만세운동이 확산되는 분위기 속에서 북이면의 만세운동도 계획되었다. 동료였던 김호상은 일제의 행정기관인 북이면사무소의 서기로 근무하고 있었지만, 평소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울분과 불만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었다. 김호상은 3월 초부터 전국적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고, 충청북도 지역에서도 청주를 시작으로 각지로 만세운동이 전파되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였다. 그래서 만세운동의 취지에 적극적으로 공감하여 북이면의 만세운동을 결심하였다. 함께 근무하고 있던 면사무소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동지를 규합하려 하였다. 김호상으로부터 북이면의 만세운동 계획을 제안 받고, 김정환·장성이 등과 함께 계획에 찬성하여 동지가 되기로 하였다. 이들과 협의를 통해 만세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하였다. 당시 청주를 비롯한 주변 지역에는 장날인 4월 2일을 새로운 만세운동의 거사일로 결정하고, 주민들의 대대적인 만세시위 참여를 촉구하는 벽보와 전단이 뿌려지고 있었다. 청주에서 예정된 대규모 만세시위 계획에 일정을 맞춰 하루 전인 4월 1일 북이면의 신대리(新垈里)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후 동지들과 함께 북이면내의 각 마을을 돌며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만세운동의 취지에 적극적으로 공감한 북이면의 주민들이 4월 1일 해질 무렵부터 신대리로 모이기 시작하였다. 주민들을 규합하여 신대리의 앞산으로 올라갔다. 산 위에서 횃불을 밝히고, 김호상이 독립을 선언하고 ‘조선독립만세’를 큰 소리로 선창하자, 다른 주민들과 함께 호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따라 외치며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횃불만세시위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3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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