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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時敎

時敎

1890. 11. 6 ~ 1948.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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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時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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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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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안동군 예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90년 11월 6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도산면(陶山面) 서부동(西部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眞城)이다. 1919년 당시 잠업(蠶業) 순회교사로 재직하였다. 3월 17일 안동군 예안면(禮安面) 장날에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듣고 조국이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중 3월 11일 오후 4시 무렵 예안면사무소를 지나던 길에 평소 친분이 있던 면장 신상면(申相冕)과 서기 이광호(李洸鎬) 등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매일신보』를 보여주며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펼쳐지고 있다고 전하였다. 이광호가 먼저 모인 사람들에게 “내일 예안면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키자”고 제의하였다. 이광호의 제의에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하며 다시 만나서 논의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이날 오후 9시 거사를 계획하기 위하여 다시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면사무소 숙직실에서 신상면·이광호·이남호(李南鎬)·신응두(申應斗) 등과 만세운동을 논의하였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3월 17일 예안면 장날에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을 정한 이후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규합하면서 면사무소 숙직실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만세운동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한편, 조수인(趙修仁)도 안동군 유림들을 규합하여 3월 17일 예안면 장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또 만촌교회 기독교도들도 신응한(申應漢)을 중심으로 모여 3월 17일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거사 때 쓸 태극기를 만들고 있었다. 3월 17일 거사 당일,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가지고 장터로 향하였다. 장터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며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오후 3시 30분 20~30명의 군중들이 면사무소 뒤편 선성산(宣城山)에서 일본이 세운 기념비인 대전기념비(大典紀念碑)를 쓰러뜨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를 신호로 시위대를 이끌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장터 중앙으로 나아갔다. 이때 다른 두 곳에서도 시위대가 나오면서 장터는 한순간에 만세소리로 가득하게 되었다.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였고 장꾼과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만세시위 열기가 높아져 갔다. 만세시위 소식을 미리 탐지한 일제 경찰이 일본군 수비대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이를 뚫고 이동봉(李東鳳)이 앞장서서 시위대를 이끌고 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이에 일제는 수비대와 경찰관주재소 경찰까지 동원하여 15명을 붙잡아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잠시 흩어졌다가 안병극(安炳極)과 함께 다시 한 번 군중들을 이끌고 예안면 우체국 앞 도로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펼쳤다. 오후 6시 구속자 석방을 위하여 주재소로 향하였다. 주재소 앞에 모인 1,5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주재소 수비병이 저지하며 폭력을 휘두르자 총검을 겨눈 수비병을 향하여 분노하며 “찔러라, 찔러라”고 하며 고함치면서 주재소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군중도 뒤따라 주재소 안으로 들어와 일제 경찰의 폭력에 맞서 돌을 던지며 대항하였다. 시위대는 주재소 유리창과 문을 부수며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시위가 점점 더 격렬해지자 일제 경찰은 총검을 휘둘러 시위대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공포를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조수인·이맹호(李孟鎬) 등이 부상을 입었고, 다른 25명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4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열린 예심에서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이후 같은 달 21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징역 4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6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로 감형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해 9월 6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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