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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容哲

容哲

1900 ~ 1920.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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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容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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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경신참변(간도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일제 자료에 따르면 1920년 당시 21세로, 1900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한자가 다른 이용철(李龍喆, 李容喆)이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만주로 이주한 이후 허룽현(和龍縣) 강역동(江域洞)에 거주하면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0년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회원으로 항일활동을 전개하다가 희생되었다. 대한국민회는 1914년 이동휘(李東輝)가 북간도 명동(明東)에서 조직한 국민회(國民會)를 전신으로 하여,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옌지현(延吉縣)을 중심으로 세력을 재구축하였다. 북간도 지방을 중심으로 주로 활동하였기에 구미 등지에서 창설된 국민회와 구별하기 위해 간도국민회(間島國民會)라고도 불린다. 국민회는 옌지·왕칭(汪淸)·허룽·훈춘(琿春) 일대를 중심으로 만세운동과 항일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때 허룽현에서 대한국민회에 가입하고 통신원(通信員)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10월 봉오동전투에 이어 청산리전투에서도 패배한 일본군이 간도 일대에서 한인 양민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학살을 자행한 경신참변(庚申慘變)이 일어났다. 같은 해 일본군 19사단 73연대에 붙잡혔고, 10월 19일 허룽현 강역동에서 같은 단체에 소속되어 있던 통신부장 이홍래(李鴻来)·비서 김용관(金龍寬)·통신원 최홍택(崔鴻澤)과 함께 총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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