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聖淳
聖淳1890. 4. 8 ~ 1951. 7.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옥구농민조합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3)
관련 사건
- · 옥구농민조합 소작쟁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3) 1890년 4월 8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서수면(瑞穗面) 서수리(瑞穗里)에서 태어났다. 옥구농민조합(沃溝農民組合) 서수지회(瑞穗支會)에 가입하여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10월 장태성(張台成)·박상호(朴相浩)·김영준(金寧俊)·신문관(申文官) 등이 옥구농민조합 서수지회를 조직하자, 이에 합류하여 함께 활동하였다. 서수지회는 지주에게 수확량의 7할 이상을 소작료로 지불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하고, 지주에게 소작료 인하와 소작 조건 개선을 요구하였다. 1927년 11월 20일 서수리 소재 주식회사 이엽농장(二葉農場)에서 도작(稻作) 검사를 소작인에게 불리하게 하자,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장태성·김행규(金幸奎) 등 농민조합 대표자들이 지배인 제등신일(齊藤信一)에게 찾아갔다. 지배인에게 소작료 인하와 부당한 관행 개선 등을 요구하였지만, 농민조합은 합법적인 기관도 아니며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인사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하였다. 11월 24일 지배인 태도에 격분한 동료들과 함께 “주식회사 이엽농장 지배인은 강도”라는 글을 작성하여 농민조합 회원 및 서수리 인근 농민들에게 전달함과 동시에 소작료 납부 거부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11월 25일 장태성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날 밤 동료들과 함께 장태성을 탈출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동료들과 함께 경찰출장소로 가서 구금 중인 장태성을 구출하였다. 이후 주변 군중에게 호소하여 경찰 주재소를 찾아가 돌을 던지며 저항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8년 2월 29일 군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와 구금자탈취죄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해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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