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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相模

相模

1908. 4. 1 ~ 1961.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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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相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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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固城)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고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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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고성농민조합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908년 4월 1일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 대가면(大可面) 송계리(松溪里)에서 태어났다. 고성 지역 사회단체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고성군 대가면 송계리와 영현면(永縣面) 봉발리(鳳鉢里) 등에서 권순학(權淳學)·이진하(李鎭河)·이효율(李孝律)·박우상수(朴又尙守) 등과 함께 고성농민조합(固城農民組合) 조합원을 모집하였다. 이를 위해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농회비, 축산조합비 등은 악세이므로 납부할 필요가 없고, 보통학교는 유산자의 자제를 교육하는 곳이므로 우리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야학교를 세워 자제를 교육해야 한다. 현재의 정치는 유산자의 이익만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에 무산자(無産者)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으므로 일치단결해서 러시아처럼 공산주의 정치를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연설을 하면서 조세, 교육, 정치제도 등 일제의 지배정책 전반에 대해 비판하였다. 1931년 10월 고성군 대가면 지주 정만규(鄭晩奎)의 소작인들이 소작지에서 보리를 경작하고자 하였는데, 정만규가 소작지를 직접 경작하겠다면서 서응수(徐應洙)를 비롯한 소작인 여러 명의 소작권을 박탈하였다. 소작인들은 소작권 계약 기간이 보리농사까지이기 때문에 올해의 보리농사까지 소작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정만규는 억지를 부리며 말을 듣지 않았다. 소작지의 보리경작을 둘러싸고 지주-소작인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자 고성농민조합의 간부로서 소작인들을 돕기 시작하였다. 1931년 10월 31일 고성농민조합의 신전반(新田班)과 대법반(大法班)의 조합원 총 40여 명을 총동원한 다음 정만규의 소작지로 향하였다. 거기서 소작권 박탈 위기에 놓인 소작인들과 함께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보리를 공동으로 경작하였다. 고성농민조합이 주도하는 소작쟁의에 놀란 정만규는 이 사실을 고성경찰서에 신고하였다. 이 일로 인해 1931년 11월 고성농민조합 동료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유치장에 구류된 상황에서 동지들과 함께 단식투쟁을 전개하였다. 1932년 6월 30일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미결구류일수 120일 본형에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노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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