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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相滿

相滿

1898. 7. 5 ~ 1938.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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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相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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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居昌)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거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민국임시정부
  • · 군사주비단
  • · 신간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7) 1898년 7월 5일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위천면(渭川面) 강천리(薑川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군사주비단(軍事籌備團)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군사주비단은 심영택(沈永澤)을 단장으로 두고, 이민식(李敏軾)이 사령장, 안종운(安鍾雲)이 부사령장, 여준현(呂駿鉉)이 재무장, 장웅규(張應圭)가 교통장, 이규승(李奎承)이 서기를 맡아 한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였다. 이들은 주비단 규칙서를 기초로 하여 조직의 이름을 ‘주비단’으로 정하였으다. 주비단은 민족의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행한 공채증권을 받아서 국내에 교부함으로써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집하여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장응규가 상하이에서 가져온 공채증권 가운데 500원권 1매를 김애한(金靄漢)으로부터 교부받고 500원을 납부하였다. 1921년 5월 이 일로 인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2년 4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미결구류일수 중 15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에도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항일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였다. 1927년 민족단일당 민족협동 전선을 표방한 신간회(新幹會)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이것에 영향을 받아서 신간회 마산(馬山)지회가 결성되자 이 조직에 가입하여 항일투쟁을 이어나갔다. 1930년까지 신간회 마산지회의 재무부·조직선전부·재정부·출판부에서 근무하며 신간회 활동에 헌신하였다. 1931년 5월 신간회 내부의 분열과 일제의 탄압으로 신간회가 해산하자 항일활동에서 물러나 은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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