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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相晩

相晩

1919. 5. 28 ~ 1944.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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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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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固城)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고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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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삼인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19년 5월 28일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 고성읍(固城邑) 오산동(午山洞)에서 태어났다. 고성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한 뒤 학교장의 주선으로 일본 규슈(九洲) 나가사키현(長崎縣) 소재 이사하야농학교(諫早農學校)에서 유학하였다. 일본에서 사용한 이름은 파산지웅(巴山智雄)이다. 이사하야농학교 재학 중 한국인 유학생인 박근철(朴根澈)이 같은 학교 일본인 학생에게 이유 없이 구타를 당하고 “조센징 주제에 건방지다”라는 민족차별적 모욕을 받은 사실을 알고 분개하였다. 그날 밤 박근철·심재인(沈載仁)과 만나 일제의 부당함을 규탄하고, 나라 없는 민족의 비참한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면서 삼인단(三人團)을 결성한 뒤 서로의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다. 1940년 나가사키현 이사하야시에 소재한 임우칠(林友七)의 집에서 심재인·박근철 등과 다시 모여 비밀결사인 재일학생단(在日學生團)을 조직한 뒤, 그 자리에 모인 학생들에게 일제의 교육정책과 농업정책의 부당함을 알리면서 반대의 입장을 당당히 밝혔다. 이들은 한국인 유학생들의 민족정신을 고취하면서 중일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구체적인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하였다. 1941년 5월 농학교를 졸업한 뒤 귀향을 결심하였다. 동지들 중 일부는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해 일본에 잔류할 것을 결심하기도 하였으나, 국내로 들어와 일본에 있는 동지들과 유기적으로 연락을 하면서 국내 민족운동 세력을 육성할 계획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재일학생단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면서 국내에서 자신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할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재일학생단은 심재인을 중심으로 일본에서 점차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이들은 우에노공원에서 정기적으로 비밀 회합을 가지면서 독립운동의 계획을 실행하기로 결정한 뒤 국내 조직과 함께 행동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일로 8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게 모진 고문을 받으며 온갖 고초를 겪었다. 1943년 5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육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3년(미결구류일수 중 36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혹독한 고문의 여독으로 병세가 급격하게 악화되어 1944년 1월 31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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