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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鳳陽

鳳陽

1924. 5. 8 ~ 2013.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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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鳳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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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용천(龍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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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4년 5월 8일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에서 태어났다. 광복 이후 서울 영등포(永登浦)로 이주하여 본적지로 삼았다. 유년 시절 일제에 국권을 강탈당한 조국의 현실에 눈을 뜨면서 항일 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한국인과 일본인을 차별하는 일제의 지배 정책을 비판하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였다. 1938년 7월 평소 뜻을 나누던 동우(同友) 김원구(金元龜)·전약용(田若龍) 등과 비밀리에 모여 태극기 알리기 운동과 역사연구 활동을 전개하면서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다. 그 후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위인 열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역사 인식 강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1939년 9월 지우개에 태극기를 그려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민족의식을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1940년 9월 신의주중학교 재학 중 동료 학생들과 함께 일제의 황국신민교육정책에 항거하기로 뜻을 모으고, 우리말을 보존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였다. 그리고 황국신민서사를 할 때 ‘우리들(我等)’이 아닌 ‘저들은(彼等)’으로 말을 바꾸어 외우기로 결의하여 황국신민서사 거부 운동을 전개하는 등 전시 체제 속에서 일제의 감시가 삼엄한 당시의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일제의 교육정책을 거부하면서 독립운동을 지속해나갔다. 1942년 3월 이들의 활동을 탐지한 일제 경찰에게 하숙집을 수색당하여 몰래 감추어 두었던 태극기와 한국사 관련 서적 등을 압수당하였다. 일제 경찰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뒤 기소되어 형무소에 구금된 채 재판을 받게 되었다. 1943년 4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2년, 장기 4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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