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鏞齊
鏞齊1875. 12. 21 ~ 1949. 5.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19년 신흥군 영고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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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75년 12월 21일 함경남도 신흥군(新興郡) 영고면(永高面) 동평리(東坪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2일 영고면 동평리에서 펼쳐진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평양(平壤)·안주(安州)·의주(義州)·선천(宣川)·원산(元山)·진남포(鎭南浦)에서 일제히 만세운동이 거행되었다. 이후 전국 각 지역으로 독립선언서가 전달되면서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신흥군에도 3월 초순 인접 지역인 함흥(咸興)을 통해서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만세시위가 계획되었다. 3월 12일 영고면에서는 동평리와 흥경리(興慶里)에 위치한 면사무소에서 각각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영고면 연동리(淵洞里)에 거주하는 박인수(朴寅洙)·박장원(朴長元)은 사전에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연동리와 인근에 위치한 신덕리(新德里)·창평리(昌坪里)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고,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도 제작하였다. 3월 12일 박인수는 박장원·박두송(朴斗松)·정문조(鄭文朝)·정영일(鄭英一) 등과 함께 면사무소에서 100여 명의 주민들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시위대를 이끌었다. 한편 3월 12일 동평리 일대에서도 만세시위가 펼쳐졌다. 같은 마을의 이인숙(李寅淑)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개신교 인사들과 함께 동평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오후 8시 무렵 이인숙과 더불어 마을 주민 50여 명을 이끌고 동네 일대를 행진한 이후, 인근에 위치한 독산(獨山)에 올라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일제 군경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 해 9월 27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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