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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用郁

用郁

1894. 10. 4 ~ 1960. 12. 30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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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高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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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고창군 무장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4년 10월 4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무장면(茂長面) 무장리(茂長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용욱(李庸郁)이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5일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같은 마을 사람인 김영완(金永玩)이 고종(高宗)의 장례식 참관을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가 그곳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한 것을 듣고, 김용표(金容杓)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계획하였다. 무장면 무장리의 장날인 3월 15일 장터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해 미리 등사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고, 가혹한 조사를 거쳐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1일 광주지방법원 정읍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하지만 일제감사대상인물카드에는 금고 1년 2월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매일신보』 기사에는 1심에 불복하며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한 것으로 되어 있고, 「집행원부」에도 항소를 취하하고 징역 1년 2월이 확정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0년 4월 26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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