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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用植

用植

187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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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用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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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대동(大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대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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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1919년 대동군 대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대보면(大寶面) 대평내리(大平內里) 출신이다. 1919년 판결문에 당시 나이가 43세로 기록되어 있어, 1877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2일 대동군 대보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동군 대보면 만세시위는 평양(平壤) 숭실학교(崇實學校)에 재학 중이던 이응칠(李應七)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응칠은 1919년 3월 1일 평양에서 열린 만세운동에 직접 참여하였다가, 대동군 일대에도 만세시위를 전파하라는 임무를 받고 대보면으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대보면 대평외리(大平外里)에 위치한 취명학교(就明學校) 교직원들과 협의하고,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2일 교직원·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파리강화회의에서 민족자결이 제창되었다는 소식을 이미 전해 들은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 독립을 열망하는 만세시위의 취지에 곧바로 공감하며 동참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3월 18일 일제 경찰에게 강압적인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일자미상일에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해 9월 13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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