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益
承益1886. 10. 3 ~ 1942. 4. 1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안성군 원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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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6년 10월 3일 경기도 평택군(平澤郡) 송탄면(松炭面) 모곡리(茅谷里)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으로 이공삼(李公三)이라 불렸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에는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元谷面)의 면사무소가 위치한 외가천리(外加川里)에 거주하며 농사를 짓고 있었다. 경기도 안성(安城)의 원곡면과 양성면(陽城面) 지역에서는 1919년 3월 말부터 만세시위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3월 28일에 원곡면 내가천리(內加川里) 주민들이 면사무소에 집결하여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다음 날에는 지문리(芝文里) 주민 수십 명이 같은 장소에서 시위를 벌였다. 3월 30일부터는 그 규모가 확대되어 외가천리를 비롯해 지문리, 칠곡리(七谷里) 등지의 주민들이 함께 원곡면사무소에서 만세운동을 펼쳤다. 그리고 마침내 4월 1일에는 양성면 주민들까지 합세하여 대규모의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 중 1919년 3월말 원곡면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운동 초기부터 참여하였다. 외가천리에 거주하면서 같은 마을 주민 이근수(李根洙)의 권유로 3월 28일에 원곡면사무소에서 전개된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4월 1일에는 이덕순(李德順)의 요청으로 양성면 동항리에 가서 만세운동에 함께 하였다. 이미 주재소와 우편소는 불에 타고 파괴되어 있었으나, 주재소를 향하여 돌을 던지고 판자로 된 우편소의 담을 부수기도 하였다. 함께 시위에 참가했던 정인규(鄭寅圭)가 주도인물로 지목할 정도로 4월 1일의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원곡면과 양성면 일대에서의 만세운동에 대응하여 일제 당국은 가혹한 검거와 색출 작전을 벌였다. 4월 2일부터 14일 사이에 64개 마을에서 약 800명을 검거하고 19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후에도 탄압은 지속되어, 이번 시위로 인해 원곡면과 안성면 주민 가운데 순국한 자들은 24명, 피검되어 옥고를 치른 인사들이 127명이었으며 방화 소실된 가옥은 9동에 달하였다. 이 과정에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와 공판이 이어졌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경성지방법원으로 관할 재판소를 지정받았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사들의 사법 절차 문제 지적 법정투쟁의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죄, 소요죄 등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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