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尙發
尙發1873. 9. 16 ~ 1947. 5.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밀양군 단장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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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8) 1873년 9월 16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단장면(丹場面) 안법리(安法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에는 고례리(古禮里)에서 사환으로 생활하였으며, 그 해 4월 4일 밀양군 단장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단장면 만세운동은 경상남도의 명찰인 표충사(表忠寺)를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1919년 3월 20일 양산(梁山) 통도사(通度寺) 승려 50여 명이 표충사로 와서 이장옥(李章玉)·이찰수(李刹修) 등 표충사의 승려들과 만나 만세시위를 결의하였다. 이들은 사전 논의를 통해 단장면 장날인 4월 4일을 만세시위 거사일로 결정하고,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하였다. 이장옥은 법무계의 서기인 김종석(金鍾碩)에게 “우리의 민족대표 손병희(孫秉熙)·김병조(金秉祚)·한용운(韓龍雲)·백용성(白龍城) 외 29인의 신탁에 따라 우리는 한국을 위해 생명을 바쳐야 한다.”는 내용의 격문을 주어 등사하게 하고, 동지로 결합한 장준식(張俊植) 등 학생들에게 만세시위 당일 주민들에게 배포할 태극기를 제작하게 하였다. 만세시위 전날인 4월 3일 지역 사회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장(張)씨 가문의 제실에서 장준식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하루 뒤인 4월 4일 태룡리(台龍里)에 위치한 단장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될 것이라는 내용을 전달받고, 이에 찬성하여 곧바로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장준식으로부터 고례리 주민들의 동원을 요청 받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4월 4일 오전 일찍 장만식(張萬植)·성도일(成道一) 등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단장 장터를 향해 출발하였다. 단장 장터로 가는 도중 사연리(四淵里)의 시위대와 결합하여 대열의 선두에 큰 깃발을 앞세우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정오가 되어 단장 장터에 도착했는데, 이미 장터에는 5,0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있었고, 장준식 등 30여 명의 학생이 곳곳에서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며 만세시위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오후 12시 30분 표충사 승려들이 장터 한복판에서 큰 글씨로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높이 세우자,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것을 신호로 큰 목소리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주도자들의 지휘에 따라 단장 장터 곳곳을 행진하였다. 이후 기세가 오른 시위대와 함께 일제의 헌병주재소 앞으로 향하였다. 5,000여 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대의 위세에 일제 헌병대는 무력 진압의 엄두를 내지는 못했으나, 여전히 고압적인 태도로 만세시위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분노한 시위대는 일제 헌병대의 해산 명령을 거부하고, 오히려 헌병주재소를 공격하여 지붕과 유리창, 벽 등을 파괴하였다. 이에 일제는 단장 장터로 지원 병력을 급파하여 시위대를 향해 총기를 발포하며 무력진압으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대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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