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祥老
祥186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1919년 4월 금천군 백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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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6) 황해도 금천군(金川郡) 백마면(白馬面) 용성리(龍城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51세로 1869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4월 1일 금천군 백마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7개 도시에서 일제히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전국적으로 만세시위는 확대되었다. 황해도 일대에서는 3월 초순부터 만세시위가 시작되었지만, 일제 군경의 감시로 금천군 만세시위는 4월 초순에 본격화되었다. 4월 1일 정오에 노형근(盧馨根)과 함께 백마면 명성리(明星里) 주민 80여 명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함께 외치면서 묘암리(猫岩里) 백마면사무소로 이동하였다. 백마면사무소에서는 장지리(長芝里) 장동(長洞) 주민들도 만세시위에 합세하였다. 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현장에 출동한 일제 헌병에 의해서 붙잡혔다. 이후 모진 조사를 거친 뒤 재판에 회부되었다. 해주지방법원 서흥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 결과, 1919년 6월 2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으로 줄었다. 이에 “자기 나라의 독립을 추구하여 만세를 외친 행위는 무죄”라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8월 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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