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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丕鎬

丕鎬

1895. 9. 12 ~ 196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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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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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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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동군 안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5년 9월 12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도산면(陶山面) 토계동(土溪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眞城)이고, 자는 자승(子承)이며, 호는 백저(白底)이다. 이명은 이정호(李正鎬)이다. 1919년 3월 18일부터 19일까지 안동면 읍내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안동군에서도 3월 13일 첫 만세시위가 전개된 이후, 17일 예안면에서 1,500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나면서 열기가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안동면에서의 만세시위는 김익현(金翊顯)·김계한(金啓漢) 등 기독교 계열과 유동붕(柳東鵬)·송기식(宋基植)이 중심이 된 유림 계열이 함께 힘을 모아 전개되었다. 3월 18일 정오 무렵 100여 명의 사람들이 만세시위를 시작하였고, 즉시 출동한 일제 경찰에게 주도자 등 14명이 체포되면서 잠시 중단되었다. 다시 60여 명이 모여서 만세를 부르자, 무력을 사용한 일제 경찰에게 2명이 추가로 연행되고 시위 군중은 해산되었다. 오후 4~5시 경에는 기독교인과 천도교도 등 수 천명이 읍내 시장에 집결하였고, ‘대한독립’ 깃발과 구한국기 등을 흔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재차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본군 보병 80연대 등 일제 군경과 소방수까지 출동하여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하였다. 이 만세시위가 다음날인 19일까지 이어지자,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평소 조국의 독립을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종악(李鐘岳)·김익근(金益根) 등과 함께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오전 1시경 약 2,000명 규모로 확대된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안동경찰서·안동군청·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등으로 이동하면서 경찰서·재판소·군청 등을 공격하였다. 다시 일제 군경의 무력 진압으로 다수의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이때 만세시위 과정에서 왼손 손등과 이마에 상처를 입고, 결국 일제 군경에게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같은 해 5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다시 징역 1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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