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鳳煥
鳳煥1890. 10. 20 ~ 1965. 2. 2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안동군 임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1890년 10월 20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동면(臨東面) 중평동(中坪洞)에 태어났다. 이명은 이봉항(李鳳恒)·이봉한(李鳳漢)이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임동면의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임동면에서의 만세시위는 유연성(柳淵成)·유동수(柳東洙)·이강욱(李康郁) 등이 주도하였다. 3월 15일 월곡면(月谷面) 계곡동(桂谷洞)에 사는 유연성은 편항시장 동편 공동 타작장(인낙장(籾落場))에서 유동수·이강욱·홍명성 등과 만나 임동면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고, 거사 날짜와 장소를 정하였다. 그리고 각각 책임 구역을 맡아 주민들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중평동 동원의 책임을 맡은 유곡란(柳谷蘭)·박진선(朴晋先)·박재식(朴載植) 등은 전국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며 편항시장에서 있을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때 만세운동에 동참하기로 약속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1일 만세시위 예정 시간에 맞추어 편항시장으로 나갔다. 이미 장터에는 많은 장꾼과 주민들이 나와 있었고, 주도자들뿐만 아니라 만세운동에 참여하기로 한 여러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오후 2시 무렵 유연성이 군중 앞으로 나와 만세운동에 왜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해 연설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편항시장에 있던 장꾼과 주민들도 호응하며 만세를 불렀다. 이때 급파된 일제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시키며 주도자들을 체포하려고 하였고, 이 과정에서 배태근(裵太根)의 뺨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시위대와 함께 분노하여 폭력을 행사한 일제 경찰에게 달려갔지만, 이를 눈치 채고 주재소로 도망쳤다. 일제 경찰을 뒤따라 유연성·배태근·박진선 등이 이끄는 500여 명의 시위대와 더불어 주재소로 이동하였다. 그러자 일제 경찰이 권총을 쏘며 위협을 가하였고, 더욱 분노한 시위대와 함께 돌과 몽둥이로 출입문을 부수고 주재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재소 벽과 창문 등을 모두 부수고 사무실에 들어가서 책상과 의자 등 기구들도 파괴하였으며, 서류와 장부 등도 파기하여 창문 밖으로 던졌다. 또한 일제 경찰로부터 빼앗은 대검과 권총, 주재소 안에 있던 탄환과 무기 등을 모두 모아 주재소 뜰 안의 우물에 버렸다. 이어서 일부 시위대는 경찰 숙소로 몰려가 침대와 책상, 의복 등을 모두 부수고 찢었다. 이러한 시위대의 격렬한 저항에 주재소와 경찰 숙소는 기둥과 지붕만을 남겨 놓은 채, 전부 무너져 폐허를 방불케 하였다. 이후 일부 시위 군중과 함께 자진 해산하였다. 다음날부터 주도자와 참여자 검거에 혈안이 된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1919년 4월 17일 대구지검으로 이감되었다. 이 일로 같은 해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건조물손괴죄, 가택침입죄, 상해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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