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大執
大執188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2)
관련 사건
- · 청양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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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2)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운곡면(雲谷面) 모곡리(茅谷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3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이석규(李錫圭)를 사용하였다. 청양군 운곡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3일의 만세운동 시도가 일제 경찰에 사전에 발각되어 좌절된 후, 운곡면에서는 4월 6일과 같은 달 8일 두차례에 걸쳐 야간에 횃불시위의 방식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제2차 횃불만세시위인 4월 8일의 시위는 인근의 비봉면(飛鳳面) 주민들과 연합하여 진행하였다. 야간에 산 위에서 횃불을 올리고,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는 횃불만세운동의 성격으로 인해 운곡면 만세시위의 주도 인물은 현재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횃불만세운동은 일제 경찰이나 헌병이 출동하기까지 만세운동의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어두운 야간에 전개되어 참여자들을 쉽게 식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제가 시위참여자들을 검거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주었다. 또 야간에 멀리서도 명확하게 보이는 횃불을 이용했기 때문에 시위의 효과를 높이는 것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만세운동을 확산시키는 것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4월 6일 밤 면소재지인 신대리(新垈里)를 중심으로 모곡리·영양리(永陽里)·효제리(孝悌里)·후덕리(厚德里)·위라리(位羅里)의 주민 600여 명은 마을 주변의 산 위로 올라가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하다. 이 시위에 송석지(宋錫智·宋白龍)·송석규(宋錫圭) 등 모곡리의 주민들과 함께 마을 인근의 산 위로 올라가 햇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4월 8일의 제2차 횃불만세시위에는 운곡면의 만세시위에서 영향받은 비봉면의 주민들이 적극 호응하여 연합 횃불만세시위가 계획되었다. 오후 10시경부터 운곡면과 비봉면의 주민 600여 명이 연합하여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마을 주민들과 함께 주변 산 위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는 만세시위를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야간에 두 차례에 걸쳐 전개된 횃불만세시위에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일제 헌병들은 산 위로 직접 올라오지 않고, 만세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일제 헌병들은 시위 당시에는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것에 주력하고, 이후 날이 밝은 후 각 마을에 헌병을 파견하여 횃불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체포를 시작하였다. 일제 헌병에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횃불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1919년 4월 21일의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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