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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910. 12. 9 ~ 1978.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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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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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2007)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 · 적색농민조합건설준비협의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7) 1910년 12월 9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왜관면(倭館面) 매원리(梅院里)에서 부친 이수헌(李壽獻)과 모친 순천 박씨(順川 朴氏)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이명은 이이석(李李錫)이다. 서울로 유학하여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7년 11월 11일 동료 학생들과 뜻을 합쳐 ‘일제 교육 타파’를 주장하면서 동맹휴학에 돌입하였다. 그들은 “현재의 교육 방법은 일본 신민이 되는 교육”임을 밝히면서 학교 당국에 한국 역사와 한국어 교육, 일본인 교사 배척, 학우회 창설 등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학교 측은 주동 학생들을 경찰에 넘기고 130명에 달하는 학생들을 무기정학에 처하며 학생운동을 탄압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무기정학의 부당성에 관해 문제 제기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등교를 거부하며 투쟁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발생한 항일 학생운동의 소식이 점차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게 되면서 서울에서는 신간회(新幹會)를 비롯한 각종 사회단체·학생단체들이 광주학생운동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활동과 계획을 추진해나갔다. 신간회는 긴급위원회를 열고 ‘광주학생사건보고대강연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한 뒤 선전물을 살포하기로 결의하였으나 일제 경찰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다. 권유근(權遺根)·정종근(權遺根) 등과 함께 신용우(申用雨)와 협의하여 “조선청년학생대중이여! 궐기하라. 선혈의 최후까지 조선학생의 이익과 약소민족의 승리를 위하여 항쟁적 전투에 공헌하라” 등의 내용이 적힌 격문 8,000장을 인쇄하여 살포하였다. 이처럼 격문 살포를 통해 일본 교육정책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광주학생운동의 전국화를 도모하여 한국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였으나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0년 12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고향으로 내려와 독립을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1932년 2월 정칠성(鄭七星)·이달영(李達榮)·최소복(崔小福) 등과 함께 한국의 독립과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 적색농민조합 건설준비협의회(赤色農民組合) (建設準備協議會)를 조직하였으며, 독서회인 성진회(惺進會)를 조직하여 농촌계몽과 지역민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처럼 조직의 확장을 위해 힘쓴 결과 7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성진회에 가입하여 이들과 독립 운동의 뜻을 함께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이 일제 경찰에 발각됨에 따라 1938년 2월경 다시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42년 2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84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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