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玖
承玖1892. 1. 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관련 사건
- · 1919년 영덕군 영덕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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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7) 1892년 1월 8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남선면(南先面) 현내동(峴內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경북 영양군(英陽郡) 석보면(石保面) 포산동(葡山洞)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고, 예수교 북장로파(北長老派) 포산동교회 신도였다.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덕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6일 같은 교회의 박윤규(朴潤奎)에게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있음을 들었다. 이에 거주하던 마을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3월 17일 김혁동(金爀東)·안상용(安尙龍)·이명언(李明彦)·김태을(金太乙)과 포산동교회 박윤규·안석종(安石鍾)·최기영(崔起榮) 등에게 연락하여 만세운동을 함께 할 동료를 규합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영덕 읍내 장날에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자는 계획을 세웠다. 한편, 영덕 읍내 교회 3곳을 감독하던 예수교 북장로파 조사(助師) 강우근(姜佑根)도 『매일신보』 기사를 통해 서울과 전국 각지로 확산하고 있던 만세운동에 대한 내용을 알고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에 강우근과 함께 3월 18일 오후 2시경 영덕군 영덕면 남석동(南石洞)시장에서 50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고, 같은 해 5월 2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다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조선민족으로서 조선 독립에 대해 기뻐서 축하의 만세를 불렀을 뿐 두서의 죄에 저촉될만한 행동을 조금도 한 적이 없다”며 상고하였지만,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고, 1920년 4월 27일에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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