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允禮
允미상 ~ 1908. 1. 2
관련 단체
- · 이윤례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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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6) 1907~1908년 강원도 양구군(楊口郡) 등지에서 직접 의병부대를 이끌고 활동했던 의병장이다.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자, 일제 침략에 대항하는 서울 시위대의 봉기가 일어났고 이를 도화선으로 하여 저항은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 수원진위대(水源鎭衛隊) 소속 강화분견대(江華分遣隊) 등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그 결과 많은 해산 군인들이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10월부터 일제 군경이 병력을 보강하며 본격적인 의병부대 ‘토벌’과 탄압이 시작되면서 의병부대들은 양구·인제(麟蹄) 등의 강원도 북부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겨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구지역 인근에서 활약했던 의병장이다. 1907년 말 무렵 여러 의병부대들은 관동창의대장(關東倡義大將) 이인영(李麟榮)을 중심으로 서울진공작전에 합류하기 위해 집결지인 경기도 양주(楊州)로 이동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의병부대의 진로를 차단하려했던 일제 군경과 지속적으로 전투를 벌였다. 그 가운데 인제와 양구 방면에서도 일본군과의 치열한 교전이 발생하였다. 『조선폭도토벌지』의 기록에 의하면, 1907년 11월 21일 인제 동북 30리 반 지점에서 400여 명의 의병이 인제수비대와 교전을 벌여 20명이 전사하였고, 같은 날 양구군 방산면(方山面)에서는 약 250명의 의병이 청평천수비대(淸平川守備隊)와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여러 차례 교전을 벌이던 가운데 1908년 1월 양구의 임당리(林塘里) 부근에 여러 의병부대가 집결하여 양구수비대를 공격하고자 계획하였다. 이들 부대는 1,200 ~ 1,300명에 달했고, 부대를 이끈 주요 인물은 민긍호(閔肯鎬)·이인영·정환하(鄭煥夏)·신돌석(申乭石)·오영환(吳泳煥) 등이었다. 이때 이들 주요 의병장의 휘하 의병부대에 소속되어 있었고, 이 부대의 일부인 800여 명은 양구읍(楊口邑)에서 3리(里) 떨어진 상동면(上東面, 현 동면)에 주둔하며 양구수비대를 습격하고자 계획하였다. 『폭도에 관한 편책』에는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적괴(賊魁)’로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적지 않은 부대원을 이끌고 있던 지휘관급이었음은 분명하다. 1908년 1월 2일 후지에(藤江) 소위가 인솔하는 하사 이하 12명의 일본토벌대는 의병부대가 양구수비대를 습격하려 한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2일 오후 9시 출발하여 3일 오전 7시 상동면 양두리 및 반동에 이르렀다. 여기서 800여 명의 의병부대는 일본토벌대와 조우하여 4시간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60여 명의 의병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때 교전 도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원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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