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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六手

手

187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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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六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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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潭陽)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담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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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양윤숙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용면(龍面) 대흥리(大興里, 현 용연리 용평마을)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39세로 1871년생으로 추정된다. 직업은 농업이었다. 1908년 전북 순창(淳昌)에서 양윤숙(楊允淑)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과 유격 활동을 하였다. 양윤숙은 전라북도 순창 출신으로 1906년 최익현(崔益鉉)이 의병을 일으킬 때부터 동참했던 의병 간부였다. 최익현의 의병부대가 해산되고 나서 1907년 8월 1일 군대 강제해산 이후 양윤숙은 30명에서 100여 명 정도 규모의 부대를 이끌며 의병활동에 다시 봉기하였다. 양윤숙이 재봉기하여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꾸린 1908년 이후, 의병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대에서는 소조를 꾸려 유격전에 필요한 필수품과 군수품을 모으는 데 주력하였다. 양윤숙 의병부대는 1908년 10월 순창군에 머물며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였다. 1909년 10월에도 양윤숙 의병부대는 일본군 수비대를 총공격하였다. 그 후 순창군 상치등면(上置等面, 현 쌍치면) 피노리(避老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다가 1909년 10월 26일 붙잡혔다. 의병부대에서 일본군 수비대에 대한 총공격이 있고나서 약 2주 뒤의 일이었다. 1909년 12월 1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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