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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곤

金寶坤

1891. 1. 16 ~ 1923.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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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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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淸道)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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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성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1년 1월 16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대성면(大城面, 현 청도읍) 내호동(內湖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29세로 매약업(賣藥業)에 종사하는 한편, 장로교회 조사(助事)로도 활동하였다. 청도군에서는 1919년 3월 11일부터 5월 5월 초순까지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3월 2일 평양신학교(平壤神學校)에 입학하려고 평양으로 가던 중 황주(黃州)에서 만난 평양신학교 학생 이승길(李承吉)을 통해 목사 길선주(吉善宙)가 평양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구나 홍종필(洪鍾弼)로부터도 서울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곧바로 청도로 귀향하였다. 청도로 돌아와 3월 13일부터 본격적으로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먼저 자신의 집과 동네 서당에서 서정기(徐正基)·조경윤(趙景潤) 등에게 서울과 평양 등지의 만세 시위 소식을 전하면서 만세 시위의 당위성을 설명하였다. 또한 김타관(金他寬)·정술문(鄭述文)을 시켜 밀양공립보통학교 학생들에게 통지장을 보내게 하였다. 이는 3월 14일의 유천시장 장날에 만세 시위를 전개할 수 있도록 독려하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직접 태극기 24매를 제작하여 서정기·조경윤·김타관·정술문 등에게 나눠주는 등 사전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삼엄한 경계로 인해 자신을 포함한 주도 인물 5명이 사전에 붙잡히면서 만세 시위는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자 항소하였다. 같은 해 5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도 항소가 기각되자, 다시 상고하였다. 6월 19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어 옥살이를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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