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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龍業

龍業

185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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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龍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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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춘(永春)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영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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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이강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충청북도 영춘군(永春郡, 현 충북 단양군) 어상천면(魚上川面) 대전리(大田里) 사기막(沙器幕) 출신이다. 1909년 판결문에 당시 나이가 50세로 기록되어 있어 1859년생으로 추정된다. 1907년 (음)7월부터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에서 포군(砲軍)으로 활동하였다. 이강년은 경북 문경(聞慶) 출신으로, 1896년 제천의 호좌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유격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호좌 의병부대를 이끌던 유인석(柳麟錫)이 관군과 일본군의 공세에 밀려 서행을 결정하면서 을미의병이 마무리되었다. 그러자 이강년은 유인석 휘하에서 화서학파의 문인들과 교류하고 토론하면서 의병항쟁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사군(四郡, 제천·청풍·단양·영춘) 지역과 영남·호남 각지를 돌아다니며 활동 범위를 넓혀가던 이강년은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일제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1907년 8월 1일 군대를 강제해산하며 국권침탈의 야욕을 드러내자 제천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이강년이 다시 의병을 일으키고 활동을 시작하자 1907년 (음)7월 초순 이강년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이후 포군으로서 충청·경기 가평 일대·강원·경북 북부 지역에서 전개된 일본군과의 유격전에 참여하였다. 특히 1907년 (음)7월부터 (음)10월 하순까지 약 4개월 동안 무장한 동료 수십 명과 함께 충북 영춘·제천·충주·단양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면서 충주읍을 습격하였고, 단양군 영춘면 응암리(鷹岩里)와 남면(南面) 괴평리(槐坪里)에서 일본군 풍기(豊基) 토벌대와 교전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영춘 헌병분견소와 검사에게 신문을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 일로 1909년 9월 11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고, 1909년 10월 1일 경성공소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면서 다시 유(流) 5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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