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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

金秉憲

1880. 1. 17 ~ 1949.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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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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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公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공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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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신상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0년 1월 17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신상면(新上面) 녹천리(鹿川里) 318번지에서 태어났다. 신상면에 자리한 유구시장의 만세 시위를 주도한 인물은 황병주(黃秉周)였다. 그는 『매일신보』를 통해 서울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로 천도교주인 손병희가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접하였고, 이에 자극받아 본인이 살고 있는 신상면에서도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거사일을 유구시장 장날인 3월 14일 오후 4시로 결정하였다. 계획한 날짜와 시간에 황병주는 유구시장에서 30여 명의 군중을 향해 모자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시위에 나섰다. 이때 유구 시장에서 황병주의 연설을 듣고 함께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렇게 모인 시위대 수는 점차 늘어나 이들이 우(牛)시장으로 이동하면서 독립 만세를 고창할 때 500여 명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읍내를 순찰하던 다카야먀(高山) 순사가 군중에게 여러 차례 해산할 것을 강요하였다. 하지만 점점 시위대 숫자가 늘어나자 다카야마 순사는 박용진 순사보에게 주도자인 황병주를 체포하여 유구주재소로 연행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박용진 순사보에 의해 황병주가 체포되었고, 주도자를 잃은 시위대는 우왕좌왕하였다. 그러자, 황병주를 뒤따르던 이승현(李升鉉, 聖鉉)과 황연성(黃璉性) 등이 주도하여 시위대를 독려하기 시작하였다. ‘너희들도 조선인이 아니냐’, ‘어째서 만세를 부르지 않느냐’, ‘어찌하여 너희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는가’라며, 황병주를 구출하러 주재소로 갈 것을 시위대에게 독려하였다. 이에 이들 무리를 따라 주재소로 향하였다. 주재소 앞에서는 시위대와 함께 ‘병주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군중을 해산시킬 수 없다’, ‘병주를 돌려보내라’, ‘어째서 병주를 돌려보내지 않는가? 빨리 돌려보내라’며 강하고 격렬하게 항의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모여 있던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에 돌을 던졌고 몽둥이로 주재소의 문과 등(燈), 유리창 등을 부쉈다. 이때 체포되어 1919년 6월 16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과 소요 혐의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7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1919년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다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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