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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齡鎬

齡鎬

1893. 7. 14 ~ 1964.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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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齡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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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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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대구 남문 밖 시장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3년 7월 14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도산면(陶山面) 온혜동(溫惠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眞城)이다. 한말 의병 이중린(李中麟)과 의병장 이만도(李晩燾)가 친족으로 항일 정신이 높은 가풍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19년 3월 10일 대구 남문 밖 시장 장날에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구의 만세운동은 3월 8일 서문 밖에서 첫 시위가 전개되며 시작되었다. 첫 시위 이전에 이미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3월 8일 시위 소식을 들은 후 대구에서 또 다시 만세시위가 전개될 것을 예상하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가운데 계성학교(啓聖學校) 교감 김영서(金永瑞), 학생 김삼도(金三道)·박태현(朴泰鉉) 등이 주도하여 3월 10일 남문 밖 시장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오후 4시 무렵 삼엄한 경비를 뚫고 박태현·박상룡(朴相龍)·박성용(朴聖容)·김재소(金在炤)·이덕주(李德周) 등이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쳤다. 여기에 합류하여 주도 세력과 함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펼쳤다. 시위대와 함께 장터를 곳곳으로 나누어 시위를 전개하려고 하였지만 미리 경계를 서고 있던 일제 경찰이 막고 있어 더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일제 경찰이 무력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려는 와중에 저항하다가 결국 붙잡혔다. 1919년 5월 30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6월 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감되었다. 이후 6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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