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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寧鎬

鎬

1885. 8. 22 ~ 1932.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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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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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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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동군 예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5년 8월 22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도산면(陶山面) 원천동(遠川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眞城)이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7일 예안면(禮安面) 장날에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한 사람은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를 포함해 이광호(李洸鎬)·이중원(李中元)·이남호(李南鎬)·이시교(李時敎) 등이었다. 주도자들은 예안면사무소 숙직실에 모여 만세운동을 결의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면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이 동참할 사람들을 규합하는 과정에서 참여를 약속하였다. 3월 17일 예안읍 장터에 모인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로 행진하였다. 1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연호하면서 장터 곳곳을 누비자 장터에 있던 장꾼과 주민들도 호응하며 만세시위에 동참하였다. 만세시위의 열기가 높아지자 일제 군경은 군중들을 포위하고 해산을 시도하였으나 시위대와 함께 이를 뚫고 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시위대를 막는 과정에서 일제 군경은 시위대에게 무력을 행사하고 주도자 등 15명을 현장에서 체포하였다. 주도자들이 체포되자 군중들과 함께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체포를 면한 주도 세력과 시위대와 함께 논의한 끝에 구속자들을 구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시교·안병극(安炳極) 등이 선두에서 1,5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다시 한번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구속자 석방’을 외치며 주재소 진입을 시도하였고, 그 과정에서 돌을 던지고 주재소 유리창과 문을 부수며 격렬하게 시위하였다. 그러나 일제가 더 많은 수비대를 급파하여 군중을 위협하고 공포를 발사하며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3월 24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4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고, 상고 취지문에서 “조국의 독립은 인도(人道)와 정의(正意)를 주장하는 현시대에 맞고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유지하는 방침이며 세계평화를 증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으로 처분할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그 해 5월 19일 고등법원에서도 상고가 기각되면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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