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榮來
榮來1901. 7. 29 ~ 1940. 6.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칠곡군 인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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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901년 7월 29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 진평동(眞坪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2일 인동면 진평동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칠곡군 인동면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7일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오면서 시작되었다. 이영식은 인동교회(仁同敎會) 목사였던 이상백(李相栢)을 방문하여 독립선언서를 보여주면서, 전국적인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였다. 이후 이상백은 자신의 집으로 박명언(朴明彦)·임점석(林占錫)·임용섭(林龍燮)·권영해(權永海) 등을 불러 모아 독립선언서를 보여주고, 만세운동을 벌이는 것에 대하여 의논하였다. 이때 독립선언서를 처음 보았으며,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3월 12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준비를 시작하였다. 만세운동 준비는 주로 이상백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이상백과 임용섭은 마을 곳곳에 붙일 독립선언서를 필사(筆寫)하였다. 박명언·허도언(許道彦) 등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만세운동에 참여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이때 임점석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만세시위 준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3월 12일 오후 8시 인동면 진평동의 마을 뒷산 기슭에 약 200명의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이상백과 이영식이 민족자결의 취지를 설명하는 연설을 한 후,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곧바로 출동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고, 같은 해 6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다시 징역 8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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