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蘇用
蘇用1900. 1. 6 ~ 1965. 6.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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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900년 1월 6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갈전면(葛田面) 병천리(竝川里)에서 태어났다. 김소용(金小用)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고향 마을에서 기초 교육을 마친 뒤, 목천보통학교(木川普通學校)로 진학하여 학생으로 재학 중에 같은 학교의 동급생 이규태(李圭珆)와 함께 1919년 3월 14일 목천보통학교 학생들이 전개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목천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시위는 천안군 지역에서 일어난 최초의 만세운동이었다. 이규태와 함께 목천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만세운동의 거사일을 3월 14일로 결정하고, 만세운동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여 참여를 결의한 학생들을 규합하여 이들과 함께 교내에서 태극기를 제작하면서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3월 14일 아침 179명의 학생들이 교정에 모였다. 이규태와 함께 학생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목천보통학교의 자리는 대한제국 시기에 목천관아(木川官衙)가 위치했던 곳이었다. 당시 목천관아는 사라졌지만, 이전부터 주둔하고 있던 목천헌병주재소는 여전히 학교 교정 인근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규태와 함께 학생들을 지휘하여 주재소 앞으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쳤고,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기 위해 ‘독립만세’를 연창하며 목천면을 향하여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만세시위 대열이 교정을 벗어나려고 하자,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교장 마사하라 사다노리(昌原貞範)는 학생들의 목천면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총을 뽑아 허공으로 공포를 쏘았다. 총소리를 들은 만세시위의 학생들이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교정에서 학교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이 일제 헌병분대가 출동하여 주도자들을 체포하고 만세시위를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조사받았다.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제 현병대로부터 고초를 겪었으나, 법적으로 제재 받지는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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