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小先
小先1900. 9. 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통영 통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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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8) 1900년 9월 9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통영면(統營面) 조일정(朝日町)에서 태어났다. 국희(菊嬉)라는 이명이 있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통영면 길야정(吉野町)의 기생조합소(妓生組合所)에 소속된 기생으로, 같은 기생조합소 소속의 기생 정막래(丁莫來)와 함께 통영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통영에서는 3월 9일부터 두차례의 만세운동이 계획되었으나, 모두 사전에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좌절되었다. 실제 만세운동은 3월 18일 통영장터에서 최초로 일어났다. 만세시위는 이성철(李性哲)과 이봉철(李奉哲) 형제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이날 만세시위에 동료 기생 정막래와 함께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내를 행진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18일의 만세시위에 함께 참여했던 정막래와 의기투합하여 새로운 만세시위를 결의하였다. 정막래와 함께 다른 동료 기생 5명에게 만세운동의 취지와 만세시위를 제안하였다. 동료 기생들이 만세운동 계획에 적극적인 동의함에 기생단(妓生團)을 조직하여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과 논의하여 4월 2일 부도정(敷島町) 장터(현 통영중앙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막래는 자신이 끼고 있던 금반지를 팔아 고종의 서거를 애도하는 의미로 상중(喪中)에 입는 옷(소복)과 핀, 짚신을 사서 동료에게 나눠주었다. 4월 2일 오후 3시 경부터 동일한 상복을 입은 정막래 등 기생단의 동료들과 함께 부도정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만세시위가 시작되자, 3,000명의 주민들이 시위에 동참하였다. 당시 시위에서 남자들은 모자를, 여자들은 치마를 치켜들고 열광적으로 ‘독립만세’를 외치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기생들은 모두 33명이었다. 정막래 등과 함께 다른 기생들을 지휘하여 시위대의 선두에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장터에서 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경찰들이 출동하여 시위대의 선두에 있던 기생단을 가로막고 즉시 해산을 명령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시위대의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큰 목소리로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선도하여 통영 경찰주재소를 향해 행진하였다. 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정막래와 함께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8일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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