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聖浩
聖浩1873. 12. 25 ~ 1943. 7.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미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7) 1873년 12월 25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수신면(修身面) 속창리(涑倉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미원면(米院面) 종암리(鍾岩里)로 이주하여 생활하던 중 미원리(米院里) 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미원면에서는 청주군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만세운동이 신경구(申敬求)·이용실(李容實)·이수란(李水蘭) 등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이들은 1919년 3월 30일 오후 2시경부터 미원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신경구 등은 미원장터의 사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주민들에게 한국 독립의 취지를 힘주어 연설한 후,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독립만세’의 구호와 함께 만세운동에 동참하라는 호소를 듣고, 1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대와 함께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쇼쿠다 리노스케(植田利之助) 등 미원헌병주재소(米院憲兵駐在所)의 헌병들이 출동하여 만세시위의 즉각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이를 무시하고 더욱 큰 목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만세시위를 지속하였다. 주변의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하며 시위대의 규모가 더욱 확대되었다. 일제 헌병들은 만세시위대를 즉각 해산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이들을 지휘하고 있던 신경구를 강제로 연행하여 구금하였다. 하지만 이는 시위대를 자극하였고, 연행된 신경구를 대신하여 이용실이 시위대를 지휘하였다. 일제 헌병의 탄압에 분노한 1,500여 명의 시위대는 헌병주재소로 쫓아가서 신경구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주재소장은 연행자 석방 요구에 불응하고, 오히려 항의하는 시위대를 체포하려 하였다. 이런 상황을 주시하던 이용실은 일제 헌병의 강압적 태도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만세시위대를 향해 “주재소를 파괴하라”, “주재소장을 죽여라”라고 외치고, 솔선하여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만세를 외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고 외치며, 이서구(李瑞九)·서정렬(徐正烈)·신성휴(申聖休)·김진환 등과 함께 함께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져 주재소의 기물을 파괴하고, 주재소장과 일제 헌병을 구타하였다. 그 결과 주재소의 정문 문기둥이 넘어지고 유리창이 깨졌다. 만세시위의 양상이 격렬해지자, 일제는 청주에서 보병 7명과 헌병 6명 등을 지원 병력으로 급파해 군중을 진압하였다. 시위대를 향한 발포로 2명이 사망하고 3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참극이 벌어졌고, 군중도 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일제 헌병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 일로 1919년 5월 5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죄를 이유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6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8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