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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成夏

成夏

187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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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成夏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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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장진(長津)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장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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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2)

관련 사건

  • · 신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2) 1876년 함경남도 장진군(長津郡) 신남면(新南面) 신하리(新下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44세였다. 이명은 이필하(李必夏)이다. 1919년 3월 14일 함남 장진군 신남면 고토리(古土里)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함남 장진군에서는 두 차례 만세운동이 발생하였는데, 처음은 신남면 고토리였다. 1919년 3월 14일 오후 4시 고토리 수시(水市)에 신남면 고토리, 신하리, 중흥리(中興里), 신중리(新中里), 만풍리(萬豐里), 신흥리(新興里) 등에서 200명의 주민이 모여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시위대와 함께 만세를 부르며 신남면 고토리 읍내를 돌아다니다가 고토리 헌병주재소(憲兵駐在所)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시위대가 계속해서 ‘독립만세’를 외치자 일제 헌병들은 칼과 곤봉으로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였다. 이에 시위대는 강력하게 저항하며 주재소를 공격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가 함흥-장진 간 전화선 절단을 시도하였다. 일제 헌병들이 실탄을 발사하는 등 계속되는 무력 탄압에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 과정에서 주재소를 탈출한 헌병 보조원 1명이 함남 함흥군(咸興郡) 하기천면(下岐川面) 하통리(下通里) 헌병주재소에 도착하여 헌병과 헌병보조원 등이 행방불명되었다고 거짓 보고를 하였다. 그래서 신남면 하갈우리(下碣隅里) 헌병주재소 헌병들이 고토리로 출동하여 시위 진압을 지원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2명이 순국하였다. 이후 헌병들의 검거 작전으로 붙잡힌 사람들이 82명에 달했는데, 이때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해서 항소하여 8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요죄는 무죄를 받았으나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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