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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星夏

星夏

1859. 11. 13 ~ 1919.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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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星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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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天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천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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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4월 1일 아우내장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59년 11월 13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현 천안시(天安市)) 동면(東面) 수남리(壽南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일 병천(竝川) 아우내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는 일제 헌병의 발포로 19명의 순국자와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대표적인 만세시위 중 하나인데, 병천 지역의 유관순(柳寬順)·조인원(趙仁元)·김구응(金球應)과 수신면(修身面)의 홍일선(洪鎰善)·김교선(金敎善) 등이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1일 오후 1시 경 조인원이 아우내장터의 한가운데 대형 태극기를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독립만세’를 선창함에 곧이어 유중권(柳重權)·유중무(柳重武)·조병호 등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제히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었다. 만세시위에 동참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위대열을 형성하고 조인원·유중권·김교선 등의 지휘에 따라 장터의 곳곳을 활보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병천 헌병주재소의 고야마(小山) 소장 이하 5명의 헌병들이 곧바로 출동하여 시위의 해산을 명령했다. 해산에 불응한 시위대가 더욱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외치자, 시위대의 위세에 눌려 당황한 일제 헌병의 발포로 김상헌(金相憲)이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에 시위대는 일제 헌병들을 쫓아가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평화시위임을 강조하는 조인원의 설득으로 시위대는 잠시 진정되는 듯 했으나, 일제 헌병이 다시 발포하여 유관순은 부상당했고, 부친 유중권이 사망하였다. 김교선·한동규·이백하·이순구·김상철(金相喆) 등이 이끄는 100여 명의 주민들이 주재소로 쳐들어가 유치장 벽을 부수고 구금자를 석방하였다. 일제 헌병의 발포로 흩어졌던 사람들은 다시 주재소로 모이기 시작하여 3,000여 명의 규모로 증가하였다. 이들과 함께 주재소에 대한 습격을 계속하여 건물의 뒷담을 허물고, 전화선을 절단하는 등 주재소를 대부분 파괴하였다. 하지만 시위대가 전화선을 절단하기 전에 일제 헌병들은 천안으로 지원 병력을 요청하였고 오후 4시 경 천안에서 급파된 고우(甲) 대위 이하 철도엄호대 6명이 장터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기존의 병천 헌병대와 합세하여 만세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포하여 강제 해산시켰다. 이러한 일제의 무력 탄압에 맞서 시위대의 선두에서 저항하다가 일본 헌병의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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