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成器
成器1890. 3. 7 ~ 1978. 3.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남원군 남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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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0년 3월 7일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 사매면(巳梅面) 대신리(大新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4일 남원군 남원면 장날에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4월 4일 남원면 읍내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는 전날인 4월 3일 사매면과 덕과면(德果面)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와 연결되어 있었다. 사매면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덕과면 면장(面長)이자 6촌인 이석기(李奭器)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남원헌병분대로 연행되었다. 그러자 자택에서 형제인 이형기(李炯器)·이용기(李龍器) 등과 더불어 사매면 만세시위로 체포된 이들을 구출하고, 한국 민족의 독립 의지를 더욱 강하게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남원 읍내 장날인 4월 4일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거사 당일 아침 일찍 ‘대한독립기(大韓獨立旗) 사매면(巳梅面)’이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우고, 형제들과 유창근(柳昌根)·김해근(金海根)·형갑수(邢甲洙) 등과 함께 장터로 이동하였다. 오후 2시경 남원 읍내 장터에 모인 1,0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남문(南門)을 거쳐 당시 헌병분대 청사로 사용되고 있던 광한루(廣寒樓)로 행진하였다. 그러나 이때 출동한 일제 경찰이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하고자 무차별 발포를 시작하였다. 그 자리에서 방극용(房極鏞)·김공록(金公祿) 등이 사망하는 등 참혹한 피해가 이어지면서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졌고, 다른 주도자와 함께 현장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9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0년 6월 9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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