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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先奉

先奉

1876. 12. 3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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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先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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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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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영덕군 창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876년 12월 30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9일 영덕군 창수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영덕군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 서울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김세영(金世榮)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김세영은 곧바로 귀향한 뒤 영덕군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규합하여 만세운동 계획을 세웠다. 3월 18일 권태원(權泰源)·정규하(丁奎河) 등이 중심이 되어 영해면(寧海面) 성내시장 장날을 맞이하여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영덕 각지에서 모인 2,000여 명의 군중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며 시장 부근을 행진하였고, 관공서를 공격하여 건물을 부수고 기물 및 각종 공문서를 훼손하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영해면 만세운동 소식은 창수면에도 전해져, 창수면에서도 영해면 시위에 참여하고자 오촌동(梧村洞) 및 삼계동(三溪洞)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다음 날인 3월 19일 시위대를 꾸려 길을 나섰다. 도중에 신기동(新基洞)에서 주민 여러 명을 만나 협의를 한 결과, 이미 하루가 지나 영해면 시위에 참여하기는 시간상으로 힘드니 창수면에서 자체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것에 의견이 모였다. 그리하여 신기동 마을 구장인 이현설(李鉉卨)을 비롯하여 창수동 마을 구장인 이수각(李壽珏) 및 그의 아들 이학술(李學述) 등을 중심으로 각자 동네에서 집집마다 다니며 주민들에게 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때 이수각 등의 권유를 받고 이에 찬동하여 박종하(朴鍾夏)·이석범(李錫範)·정돌석(鄭乭石)·이진택(李鎭澤) 등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특히 시위 과정에서 군중과 함께 창수주재소를 파괴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시위 당시 곤봉을 들고 와서 시위대에 합류하였는데,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창수주재소에 결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에 침입하여 주재소 및 부속 건물을 파괴하고 기타 물건 및 공문서를 파손하는 데 앞장섰다. 또한 창수동에 거주하는 오용이(吳龍伊)·이강복(李康福)·박석문(朴石文) 등의 집에 숨겨놓은 순사들의 물품 또한 파손하는 데 동참하였다. 시위대는 저녁 7시 무렵 자진하여 해산하였고, 이에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가 이후 경찰에 체포되어 4월 22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공무집행방해죄, 건조물 및 기물 손괴죄, 공문서 훼기죄, 상해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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