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汶
相汶1920. 3. 13 ~ 2016. 5. 1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고려독립청년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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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1) 1920년 3월 13일 전라남도 고흥군(高興郡) 고흥면(高興面) 서문리(西門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송강영치(松岡潁治)를 썼다. 1944년 인도네시아 자바(Java)섬에서 연합군포로 감시 요원으로 근무하던 중 고려독립청년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42년 5월 3,000여 명의 한국인 청년들과 일본군 ‘군속(軍屬)’ 신분으로 연합군 포로감시원이 되었다. 부산(釜山)에서 약 2개월 동안 훈련을 받고, 같은 해 9월 14일 인도네시아 자바섬 자카르타 북부 탄중 프리옥(Tanjun Priok)항에 도착하였다. 포로감시원으로 일하면서 한국인 동료들과 연합군을 돕는 현지 항일운동 조직을 만들기로 계획하였다. 당시 스마랑(semarang)지구에서 동료 이억관(李億觀)·임헌근(林憲根) 등과 협조하여, 자카르타(Jakarta)지구에서는 문학선(文學善), 암바라와(Ambarawa)지구에서는 손양섭(孫亮燮)·조규홍(趙奎洪) 등과 접촉하였다. 그리하여 1944년 12월 29일 고려독립청년당(高麗獨立靑年黨)을 결성하고, 강령·선언문·당가(黨歌)까지 만들었다. 총령 이억관과 군사부장 김현재(金賢宰)·조직부장 임헌근 등이 주도하였고, 이때 스마랑지구 책임자로 선임되었다. 1945년 1월 4일 자바섬 중부 암바라와에서 당원인 손양섭·민영학(閔泳學)·노병한(盧炳漢)이 자동차와 총기를 탈취한 후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모두 사망하였다. 이에 일본군은 한국인 군속들의 대규모 반발 등을 우려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방면으로 전속(轉屬)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고려독립청년당은 탄중 프리옥 항구에 정박 중인 선박 탈취를 기도하였는데, 계획이 누설되면서 실패하였다. 이로써 고려독립청년당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고, 같은 달 28일 총령 이억관을 포함해 10명이 붙잡혔다. 이후 싱가포르로 압송되어 1945년 5월 24일 자카르타 일본군사령부 군사법정에 송치되었다. 같은 해 7월 21일 일본군 제16군 군사재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겪다가, 광복을 맞이하여 9월 4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정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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