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金範俊1896. 8. 18 ~ 1963. 4.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정미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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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96년 8월 18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재 당진시) 두산리(杜山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3일 광무황제(고종)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대호지면의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서울로 상경하였다. 이들은 3월 1일 만세 시위를 목격하고는 태극기 1매와 독립선언문 1매를 석유램프 속에 숨겨서 돌아왔다. 그들이 만세 시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호지면의 면장 이인정(李寅正)·민재봉(閔載鳳)·강태원(姜泰沅)·송재만(宋在萬)·김동운(金東云) 등 면사무소 직원들과 백남덕(白南德), 홍순국(洪淳國) 등 천도교(天道敎) 세력이 결합하였다. 거사 일은 4월 4일로 정미면(貞美面)에 자리한 천의장터에서 일으키기로 모의하였다. 이인정 면장을 비롯한 면사무소 직원들은 많은 주민을 동원하려고 면장 명의의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서를 작성하였다. 면사무소는 각 마을의 구장에게 이 공문서를 발부하여 “4월 4일 면내 가호당 주민 1명씩 출석하여 도로 보수에 참여하라”라는 내용을 주민들에게 전달하도록 하였다. 구장으로부터 도로 보수에 대한 통지를 받고 4월 4일 아침 다른 주민들과 함께 농기구를 지참하고 대호지면사무소로 집결하였다. 당시 인원은 600여 명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인정과 유생들이 도로 보수는 위장된 목적이었고, 실제 목적은 만세 시위임을 밝히고, 집결한 주민들에게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공감한 주민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로부터 7킬로미터 떨어진 천의장터로 향하였다. 천의장터에서는 정미면의 주민까지 1,000여 명으로 불어난 군중과 함께 시장 곳곳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천의장터의 만세 시위는 오후 4시경까지 진행되었고, 시위 참여자들은 송순국과 남주원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으려고 조를 편성하여 음식점에 들어가 식사를 하였다. 이때 만세 시위를 진압하러 지원 나온 당진경찰서의 경찰들이 사람이 많은 음식점으로 와서 대형 태극기를 빼앗으려 하여 사람들이 반항하자, 당황한 경찰들의 발포로 4명의 시위 참여자가 부상을 입었다. 이에 대항하여 일어난 천의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였다.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고, 경찰을 구타하는 등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한 후 시위대는 자진 해산하였다. 홍성헌병수비대가 대호지면으로 출동하여 만세 운동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 검거에 나서면서 붙잡혔다. 서산경찰서로부터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의 명목으로 4월 23일 태형 90도의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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